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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이야기

[일상 이야기] 딱 하나만 생각대로 된 새해 첫 날

by 미키씨 2022. 1. 1.

유튜브에서 본 하조대 일출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슬프게도 아주 별로인 새해 첫 날을 보냈기에 썰을 남겨둘 가치가 있는 듯해서 블로그를 켰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께는 이런 일이 없었길 바라며, 제가 대신 액땜살풀이를 할테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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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들기 전까진 되게 야심찬 계획이 있었어요. 원래는 계양산에 올라 일출을 보려고 했었거든요.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스스로 게을러져서 그냥 잘래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아주 굳게 먹었더랬습니다. 당연히 아주 추울 거라는 일기예보도 미리 봤고, 동생놈한테도 같이 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지만 그래도 혼자라도 꼭 가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습니다.

어, 그런데 잠들기 전에 검색해보니 코로나로 2022년 해돋이 명소들이 폐쇄된다는 기사가 뜨더군요. 인천은 무려 계양산과 마니산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주변에 그래도 덜 유명한 산이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누워서 열심히 검색을 해 보니 소래산이라면 괜찮을 것 같더군요. 계양산보다 높이도 낮고 이 정도면 오케이! 멘탈을 가다듬고 알람시간도 소요시간까지 계산해서 맞춰놓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실은 자취방 나온 이후론 본가에서 잘 자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오늘도 그랬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여섯 시쯤 겨우 눈이 감겼는데 하필이면 알람시간이었어요. 잠시 다시 또 결심이 흔들렸지만, 내가 이것도 못하면 올해 수많은 일들 어떻게 헤쳐 나가겠냐 싶었습니다. 굳건히 일어나서 창고방에 들어가 결연히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는 소리에 잠귀가 얕으신 어머니가 일어나셨습니다. 뭐 하냐고 일갈을 하시더라고요. 소래산에 일출 보러 간다 했더니 대뜸 미쳤냐? 는 소리를 ㅡㅡ; 오늘 기온이 몇 도인지 아냐, 이 밤중에 누가 산을 가냐(일출산행객 형들 의문의 1패), 길이 보이긴 하냐(야간산행 다녀본 사람은 난데), 해 오늘 안 봐도 된다, 마지막엔 아 그냥 가지 말라면 가지 마라...

그 소리에 동생도 깨서 같이 새벽에 뭐하냐고 개지랄을 하는데, 아니, 저라고 이 추운 날에 산에 올라가고 싶었겠어요. 산에 왜 올라가고 싶었냐면, 올해 집안에 중대사가 많으니까 그랬습니다. 일단 제가 결혼을 하고, 동생도 어쩌면 연말쯤 결혼을 할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고, 집은 3월쯤 되면 이사를 가야 할 걸로 알고 있구요. 그래서, 나라도 안 하던 해맞이 총대라도 메고 좀 좋은 기운을 받아 가족들의 한 해를 열고 싶었습니다. 내가 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ㅡㅡ;

한 20분 이제는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아무튼 미쳤냐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자리로 돌아와 여덟시 반까지 울었습니다. 새해 첫 날 운 게 처음은 아닌데 대부분은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뭐, 1시쯤 이제라도 해돋이 보러 가자고(차로) 두 분 격하게 싸우다가 겁먹은 때도 있었고, 집에 기어코 일찍 오라고 해서 연인과의 약속도 못 지키고 집에 들어왔는데 귀가해보니 이미 주무신 적도 있구요(왜 오라고 한 건지?), 그 외 기타 등등. 부모님 살아계실 때 말 잘 듣고 달 해드려야 되는 건 맞지만, 때로 우리들 중의 누군가는 부모님과는 꽤 다른 인격체들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 이렇게 칭얼대고 있는 제가 아직 어린 것도 사실이구요.ㅋ

여튼 그래서 누워서 조용히 울다가 일어나보니 먹으라고 꺼내놓고 가신 냉동불고기가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2주는 넘게 지난 거였습니다. 그 전날 동생이 소고기 사오라고 해서 마트에서 한우로 사다 드렸는데... ㅋ 그건 맛 가기 전에 드실라나. 떡국도 없는 걸로 봐선  저녁에 끓여 드실 작정이었는 모양인데, 전혀 같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집안일 쌓인 건 자꾸 눈에 들어와서 공구함 정리해 드리고 화장실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이어서... 집 나와서 동생 차에 실내 LED 풀세트로 갈아주고... 자가격리중인 구 외노자(?) 친구를 급 방문해서 먼 발치에서 얼굴 보고 맥주와 떡국을 사다 주었습니다. 길에 깜빡이 킨 차들 많이 비켜 주고요 배달도 안 시켜 먹고 집에 남은 먹을 것들 뒤져서 밥 잘 챙겨 먹었습니다. 혼자 떡국도 먹었습니다. 선배님 직구 문의하신 것도 상담해드리고, 여러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와 댓글 남기고 감사히도 연락 주신 분들께도 덕담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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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잠들기 전에 올해 나의 방향성은 뭘까 골똘히 생각해봤는데(디테일한 거 말고) '선한 영향력' 이라는 어구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그거는 이뤘던 거 같긴 하네요. 근데 그 외의 나머지는 너무 외롭고 엉망이었습니다. 주차하다가 연석에 휠 긁어먹곤 더더욱 슬프고 외로웠습니다.(ㅠ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홀로서기 를 거기에다가 추가해야겠습니다. 곧 둘이 있으니까 '홀로서기' 아니고 '둘이서기' 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자신도 반성하게 됩니다. 사람은 끝내 자기 앞에선 홀로이지 않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방향성에 본인들도 동참시켜 달라고는 하지만, 그걸 완전히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깨달은지 오래고.

그리고 그래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부둥부둥 해주어 봅니다. 사람이 하던 일, 안 불편한 일만 하면 발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정신으로 이 악 물고 자기계발이랑은 거리가 머나 먼 집구석에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일찍 자면 좀 나아지겠죠.
지금 여기가 새로운 1년 중 가장 저점이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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